대통령은 대통령제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국가의 지도자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제를 준수하는 국가입니다.
프레지던트(Presiden)라는 단어는 라틴어, 즉 '앞에'를 의미하는 prae와 '앉다'를 의미하는 sedere에서 유래했습니다. 사회를 보거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president의 인도네시아말 : presiden(프레시덴)
일반적으로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간접적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제 공화국 정부 체제를 가진 나라의 국가 원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직무를 수행할 때 대통령은 다른 사람, 즉 부통령의 도움을 받습니다. 부통령은 대통령보다 한 단계 아래의 직급입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국민 직선제의 시작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에는 대통령 선거가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가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인도네시아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였습니다.
현재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지며 한번 연임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국가는 7명의 대통령이 이끌어 왔습니다.
인도네시아를 이끌었던 대통령들의 발자취를 알아보자
1. 수까르노(Soekarno) 대통령(1945-1967)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인도네시아 독립을 이끈 영웅입니다. 1901년 6월 6일 동부 자바에서 태어났고,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ITB)에서 공학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친근하게 붕 카르노(Bung Karno : 까르노 형)라고 부릅니다.
수까르노 대통령은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단호하고 과감하게 반대하며 열심히 싸웠습니다. 독립 후 그는 초대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인도네시아 독립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인, 지금까지 국가의 기반이 되고 있는 빤짜실라(Pancasila)가 그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수하르또’의 쿠데타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당하고 1967년 대통령에서 하야 하였습니다.
*빤짜실라(Pancasila) : 인도네시아의 건국 5대 원칙으로, 산크리스트어에서 '다섯'을 의미하는 '판짜(Panca)'와 '원칙'을 의미하는 '실라(Sila)'의 합성어이다.
2. 수하르또(Soeharto) 대통령(1967-1998)
1921년 6월 8일 족자카르타(Yogyakart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 독립을 위해 싸운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를 군부 쿠데타로 축출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쿠데타 명목은 공산주의 추출이었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100~300만 명에 이르는 정적과 반대파들의 학살하였습니다. 역대 최장수 대통령, 독재자 수하르또가 지배하는 30년 철권독재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30년 동안 국가의 안정을 빌미로 모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였습니다.
이에 결국 국민들은 수하르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어지고 더 이상 버틸 없던 그는 결국 1998년 5월 21일 대통령직에서 사퇴하였습니다.
3. BJ 하비비(Bacharuddin Jusuf Habibie)(1998~1999)
하비비는 수하르또 대통령 재임 기간 부통령을 역임한 대통령입니다. 하비비 통령은 수하르또 대통령이 사임한 후 잠시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가진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입니다. 하비비는 기술평가응용청(BPPT) 청장을 지내면서 비행기 만들기에 성공한 천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하비비 정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침묵하던 언론법, 선거법 제정, 화교에 대한 차별 금지,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키는 등 인도네시아가 과거 구 체제에서 개혁 시대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4. 압둘라흐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 (1999-2001)
구스두르(Gus Dur)로 더 잘 알려진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은 나드라뚤 울라마(Nahdlatul Ulama)라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이슬람 조직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하비비 사임 후 1999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간선제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사실상 최초로 민주적 성격의 선거를 통해 나온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자 간접선거로 선출된 마지막 대통령입니다.
그는 임기 중 경제·금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 지역 사회의 쌀 수요가 증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였습니다.
그러나 수하르또부터 이어진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였으며, 동티모르 독립 문제에서 갈팡질팡하다 부패 문제에까지 연루되어 결국 2001년 탄핵으로 물러나 ‘메가와티 수까르노 뿌뜨리’ 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5. 메가와띠 수까르노 뿌뜨리(Megawati Soekarno Putri) (2001-2004)
1946년 1월 23일 족자카르타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1년 7월 23일 압둘라흐만 와히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나머지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수까르노 초대 대통령입니다. 그녀는 임기동안 인도네시아를 IMF 부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1998년에 시작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임초반에는 아체 반군에 대한 무력토벌 등 강경 정책으로 지지율이 높았지만, 임기말 유가상승으로 민심이 멀어져 2004년 대선에서 낙선하였고, 2009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역시 낙선하였다.
6.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2004-2014)
인도네시아 6대 대통령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줄인 SBY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인도네시아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군인출신이지만 그의 잘생기고 공손한 얼굴은 매력적이어서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초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입니다.
(* SBY 인도네시아 발음 : 에스베예)
그러나 속한 정당의 부패 문제가 심각하였고, SBY 대통령은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빈곤율을 줄였다고 사실과 다르게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정권 말기에는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7. 조꼬 위도도(Joko Widodo) (2014-2019, 2019~2024)
조꼬 위도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자와 수라까르따(Surakarta) 시장과 자카르따(DKI Jakarta) 주지사를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조꼬위(Jokowi)로 더 잘 알려졌고,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을 닮은 외모와 정치성향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버락 오바마'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조꼬 위도도 대통령의 당선은 정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정권 교체를 이룬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군복무 경력과 정치적 배경이 없는 민간인 대통령으로 청렴함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인도네시아 기성세대 정치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합니다. 조꼬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습니다.
2019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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